유학을 오게 되면서 핸드폰을 해지했다. 비록 전화질의 달인은 못되어 VIP는 아니었지만 K모 통신사의 꾸준한 장기고객이었는데 해지를 하게 되니 왠지 서운했다. 그 많은 해택을 다 써보지도 못한 통신사 카드와 송혜교가 출연한 광고만 좋았던 나의 후져빠진 심플폰과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내 핸드폰 번호 뒷자리는 0536이었다. 특별히 비밀로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굳이 말할 기회도 없었고 사람들도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아서 거의 말한 적이 없었던 것 같지만 이 뒷자리는 집 전화번호도 아니고 내 생일도 당연히 아니고(36일은 없으므로...) 학번이나 주민번호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 과연 무엇일까? 잠시 맞추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계속 읽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라. (여전히 궁금하지 않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힌트1 : 이 번호는 노래와 관련이 있다.
힌트2 : 이 번호는 김동률, 이적과 관련이 있다.
감이 잡히는가? 뭔가 정답의 근처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언젠가 크리스마스 특집 연상 퀴즈를 만들어 본 적이 있었는데 출제자는 쉬워보여도 맞추는 사람들은 보통 곤혹스러운 법이라는 것을 그때 잘 배웠다.
0536은 거위의 꿈이다. 김동률, 이적이 함께 프로젝트로 내놓았던 카니발 앨범의 뒷면을 보면 10번 트랙 5:36 거위의 꿈을 발견할 수 있다. 폰을 만들던 당시 나는 왠지 나의 번호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싶었고 세상의 벽에 부딪히더라도 어린 시절의 꿈들을 잊지 말아야 겠다는 엄청난 뜻에서 0536이라는 번호를 만들었던 것이다. 왠지 그럴싸하지 않은가? 뭐 0536이 기억하기 쉬운 번호도 아니고 입에 착착 감기는 번호도 아니었지만 나름의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이런 심오하신 의미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거위의 꿈을 뒤로한 체(???) 미국에서 새로운 폰을 개통하게 되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외국인의 신분으로 400달러라는 막대한 예치금을 지불한 뒤 얻게 된 번호는 완전한 무작위 번호였다. 혹시 2222같은 포 오브 어 카인드나 아니면 1234 같은 스트레이트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아무렴 어떠냐는 마음이 뒤엉켜 핸드폰 가게를 잠시 서성였다.(한 때 모군의 집전화로 밝혀져 충격을 받았던 2102도 조금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받은 번호는 두구두구두구두구~
6337
헐. 당연히 무작위 번호의 대부분은 특별한 번호가 아닐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받고 나니 왠지 허탈했다.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부분은 삼삼칠이다. 삼삼칠 박수를 치자는 뜻으로. 하지만 그 앞의 6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요! 삼삼칠? 아 너무 억지다. 어쨌든 삼삼칠이 들어갔다는 사실에 평범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어쨌든 덜컥 받게 된 이 녀석도 앞으로 나와 많은 추억을 겪게 될 것이니 사랑해주어야겠지.
친하게 지내자 6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