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 2013/12/13 16:54

예전에 한참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이해해갈 무렵 인간 소통의 불완전성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겹치면서 생각의 잉태와 표현, 그리고 표현과 받아드림에 대해 개똥철학의 탑을 쌓던 시절이 있었다. 이 중에 잉태와 표현의 간극에서 재밌는 케이스 스터디를 하나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그냥 재밌으니 들어보시라.

당신은 과제도 하고 공부도 하기 위새 학교 중앙 도서관을 비슷한 시간에 자주 이용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어떤 여학생 (여자라면 남학생)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그 학생은 내가 마음 속으로 가장 좋아하던 (그렇지만 너무 유치해서 차마 말은 못하던) 스타일의 옷을 자주 입고 다녔고 가끔 눈빛이 마주치면 뭔가 알 수 없는 측은지심을 불러내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당신의 마음 속에 그 학생은 점점 커져갔다. 이름도 모르고 사실 그 학생도 당신을 인지하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게 좋아하는 마음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무렵 학기가 거의 끝나가고 기말고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신은 가끔 그 학생을 바라보며 그냥 하던 공부만 하고 있었다.

자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만약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그 학생에게 용기를 내어 전달하지 않는다면 과연 당신의 마음은 존재하는 것일까? 이 정도에선 당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음 속으로 관심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만약 이 일화를 친구들에게 조차 단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면 이 마음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거의 존재감이 미미하긴 하지만 있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만약에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고 세월이 지나 당신조차 이 사실을 까먹었다면?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당신이 잠깐 그 학생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일말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거니와 당신조차 그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마음이 존재한다고 혹은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거의 미미할 정도로 당신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있다가 그 학생이 지나가는 바람에 옷에 살짝 쏟아서 묻은 얼룩의 정도로나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마저도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요는 표현되지 않는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동치라는 것이다. 커피 얼룩의 예처럼 대게 정말 엄밀하게 동일한 경우는 잘 없지만 마음은 표현될 때에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시절에 하였던 사고실험(?? 게당켄 엑스페리멘트 ㅋㅋ)의 교훈이다. 어쨌든 그 후로 나는 누군가를 혼자 짝사랑하는 사람들이 상담을 해오면 왠만하면 고백하라고 말한다. 심지어 가능성이 무척 낮더라도. 고백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 것과 동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2013/12/13 16:54 2013/12/13 16:54
Trackback Address :: http://smile21h.isloco.com/trackback/2304154

기억 :: 2013/12/08 19:20

신경생물학을 공부하다보면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도 참 이렇게 아슬아슬해보이는 소프트 머터리얼에 의존하는 기록에 지나지 않는데 우리는 그것을 굳게 자신의 자아로써 의지하고 살아간다는게 재밌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하다. 서른이 되면서 나이가 들었는지 (???) 꼭 외웠으면 하는 것들을 잘 못 외우고 얼마 되지 않는 일화들도 자주 까먹는다. 소샬 시큐리티 넘버라든지 중요한 전화번호라든지 하는 것들이 예전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외워지기도 했던 것 같은데 요새는 저절로 까먹어 지는게 더 많은 것 같다. 그냥 내가 정신이 좀 없는 것을 공연히 세월탓을 하는 것 같긴 하다.

 그런 반면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데 머릿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별로 중요하지 않는 노래 랩가사. 나는 원타임 쾌지나 칭칭 랩을 여태 다 외우고 다닌다. 고등학교 시절에 축제 무대에서 친구들과 부른 적이 있어서 각인된 것 같은데 애착을 가지고 있는 노래도 아닌데 떨쳐지지가 (?) 않는다.

"<송백경>난 그저 단지 당신이 바라는 그 뭔가를 주러 왔지 가식적인 모습들은 뒤에 두고 (고!) 우리의 생활 방식들을 구속 (속!) 하는 무리들은 뿌리쳐두고 함꼐 할텐가 또 갈텐가 엄마한테 물어볼텐가 지금 때가 어느 땐데 (허!) 숨바꼭질하다가 뒤쳐지게 될텐데~ <테디> 요, 가진건 마이크 밖에 없네 지루 했던 어제 멋대로 자랑하며 즐겨주길 바래 (이야후~) 이제 좀 이래라 저래라 듣기 싫어 너나 잘해라 서서히 눈을 감아 음악을 함께 느껴봐바 힙합얼~ (쾌지나 칭칭나네~) 지금이 니가나 설차례!"

 뭐 여튼 이렇게 머릿속으로 자동재생 된다. (입으로도 된다 ㅋㅋ) 또 하나 머릿속에 깊이 각인 되어 잊혀지지 않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중 하나는 대학교 때 동아리에서 공연했던 Lee Ritenour의 "Rio Funk" 베이스 리프. Marcus Miller가 연주한 리프고 중간에 꽤 긴 베이스 솔로도 있어서 베이스 연주자라면 굉장히 해보고 싶은 노래이기도 하고 또 어려운 노래이기도 해서 엄청나게 연습했었던 노래인데, 베이스 솔로 부분에서 긴장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이 솔로 운지를 한 오년은 완벽하게 기억했고 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 가물가물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운지를 약간 잊었다는 것이지 솔로 자체는 입으로 재생 가능할 정도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땃 따다 따 둑따둑둑딱뚝 딱 두둥..." 뭐 이렇게.

 기억이라는 것은 참 재밌는 친구다. 이렇게 글을 마치려 했는데 참 재밌다고 하니 갑자기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 검사 받던 일이 또 생각난다. 그 때 당시 "참 재미있었다" 로 일기를 마치면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 대신에 잘 했어요를 주셨는데 생각없이 똑같이 반복해서 일기를 쓰지 말라고 그러셨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한번 다른 부분은 나름 창의적으로 성의 껏 쓰고 끝 부분만 "참 재미있었다"로 끝내면 참 잘했어요를 주실까 안 주실까 궁금해서 해본 적이 있는데 결국 참 잘했어요를 못 받았다.

2013/12/08 19:20 2013/12/08 19:20
Trackback Address :: http://smile21h.isloco.com/trackback/2304153

선곡 리스트 :: 2013/11/01 17:06

 가사, 분위기와 아무 상관 없이 어떤 추억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좋은 노래. 그냥 저냥 듣던 노래가 어느날 갑자기 문득 가사의 내용이 와 닿으며 좋아진 노래. 노래 자체의 절대적인 좋고 나쁨도 있지만 보통은 여러 추억, 감정들과 얽혀서 노래의 맛이 나는 것이지. 그러니까 노래도 술처럼 숙성이 잘 되어야 진정한 맛이 나오는 법. 시간이 지날 수록 숙성되어가는 노래들의 래파토리가 늘어나는 것 같아서 좋다. 할아버지가 되어서 가요무대를 보면 엄청 비싼 양주를 먹는 느낌일까?



2013/11/01 17:06 2013/11/01 17:06
Trackback Address :: http://smile21h.isloco.com/trackback/2304152
< PREV |  1  |  2  |  3  |  4  |  5  |  ...  75  |  NEXT >